민어는 예부터 상류층이 즐긴 고급요리다. 민어는 백성들과는 거리가 먼 생선이었다. 그런데 왜 백성 ‘민(民)’자를 붙여서 민어(民魚)라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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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탕은 임금님 수랏상 단골음식이었다. 조선시대 삼복 복달임으로 첫째 민어탕, 둘째 도미탕, 셋째 보신탕을 쳤다. 복날이 오면 양반은 민어탕을, 상놈은 시냇가에 모여 보신탕을 즐겼다. 민어탕은 단물 쩍쩍 오른 애호박, 아삭아삭 상큼한 미나리에 쑥갓, 팽이버섯, 뭉텅뭉텅 넣고 고추장을 풀어 끓인다. 참기름 등 강한 양념을 넣으면 고유 맛이 사라진다. 맛이 깊고 담백하다. 뜨거울 때 먹어야 노란 기름이 굳지 않아 시원한 느낌이 든다. 모락모락 김 자르르, 노란 기름 두둥둥! 염천고열에 그 깊고 시원한 맛, 장독대 새우수염 족두리꽃이 허허허 너털웃음 웃는다. 닻 들어라. 닻 들어라. 지국총지국총 어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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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는 예부터 상류층이 즐긴 고급요리다. 그런데 왜 백성 ‘민(民)’자를 붙여서 민어(民魚)라고 했을까? 원래 민어와 조기는 사촌쯤 되는 친척이다. 큰 것이 민어이고, 작은 것이 조기인 것이다. 중국인들은 조기를 석수어(石首魚) 혹은 면어(鮸魚)라고 불렀다. 이 중 ‘鮸(면)’의 중국발음이 ‘民(민)’과 비슷하다. 이에 조선선비들은 이 고기를 ‘민어(民魚)’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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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는 백성들과는 거리가 먼 생선이다. 민어는 어부들이 잡았지만 그걸 주로 먹는 사람들은 신분 높은 한양 대갓집 양반들이었다. 이름은 ‘백성물고기’ ‘국민물고기’인데 실제는 ‘양반생선’인 것이다. 그것은 누에고치에서 실을 짜 내는 것은 평민들이지만, 막상 비단 옷을 입는 것은 귀족들인 것과 마찬가지다.
어제 성안에 갔다가
손수건에 눈물 흥건히 적시고 돌아왔네
온몸에 비단을 감은 사람들은
누에를 친 사람들은 아니었네
(昨日到城廓 歸來淚滿巾 遍身綺羅者 不是養蠶人)
-<작자미상 중국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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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회, 민어탕, 민어회무침, 민어구이, 민어전, 민어아가미무침, 민어뼈다짐··· 민어는 못 먹는 게 없다. 비늘과 쓸개를 빼고는 다 먹는다. 육지의 소(牛)나 마찬가지다. 먹을 수 있는 부위가 자그마치 20여 곳이나 된다. 펄펄 뛰는 활어보다는 어느 정도 숙성된 선어(鮮魚·냉장된 것)가 맛있다. 단연 수컷 뱃구레(뱃살)를 최고로 친다. 기름기가 있어 쫄깃하고 구수하다. 회는 된장에 찍어먹거나 묵은지에 싸서 먹는다. 민어껍질은 전을 부치거나 살짝 데쳐 참기름소금장에 찍어 먹는다. 쫄깃쫄깃하고 고소하다. 데친 껍질에 밥을 싸서 먹어도 기가 막히다. 지느러미도 엇구뜰하다. 지느러미뼈와 가장자리 살은 뼈다짐으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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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 알은 어란으로 으뜸이다. ‘봄 숭어알, 여름 민어알’이다. 참기름을 몇 번이고 발라가며 그늘에서 말린다. 입안에서 스르르 녹는다.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민어 뱃살 안쪽 좌우에 붙어있는 가슴살 ‘갯무레기’는 단단하면서도 맛이 깊다. 쫄깃하고, 사각거린다. 찰지고 감치는 맛이 있다. 회로는 수컷민어 가슴살 갯무레기와 뱃살이 으뜸이라 할 수 있다. 배 저어라. 배 저어라. 지국총지국총 어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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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 어만두도 일품이다. 민어 살을 저민 조각에 소를 넣어 반달모양으로 만든 뒤 그것에 녹말을 씌워 찌면 된다. 어채는 납작하게 저민 민어 살을 오이 홍고추 표고버섯 등과 함께 녹말가루에 굴린 후 끓는 물에 데친다. 한마디로 생선을 데쳐서 온갖 채소와 어울려 먹는 음식이다. 민어 말린 것을 얇게 저며 참기름 양념장에 찍어먹어도 맛이 황홀하다. 인천지방에선 민어대가리 등뼈 내장을 넣어 끓인 서덜탕(일명 서덜이탕)이 일품이다. 아가미와 내장으로 담근 민어젓갈도 있다. 쌀 뜬 물에 마늘만 넣고 푹 고아내면 민어곰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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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는 전남신안 임자도, 지도 그리고 영광낙월도 부근에서 잡힌 것을 최고로 친다. 중국산이나 양식민어는 더 말해서 뭐하랴. 요즘 흔한 중국산 점성어(홍민어)는 값은 싸지만 맛이 별로다. 옛날 임자도 사람들은 ‘한여름 민어 떼 우는 소리에 잠을 설칠 정도였다’지만 요즘은 점점 어획량이 줄어들고 있다. 그만큼 자연산민어는 귀하고 비싸다. 도대체 그 많던 민어는 다 어디로 갔을까. 신안 앞바다에서 잡히는 민어는 신안지도읍 송도어판장으로 모인다. 매일 아침 경매가 이루어진다. 30여 년째 그곳에서 민어 도소매업을 하고 있는 지도횟집(010-3641-3219, 택배가능)의 정화자 사장(남편은 어선선장)은 말한다.
“갓 잡은 수족관의 민어가 ‘꿔억~ 꾸욱~’ 개구리 울음소리를 낸다. 이제 슬슬 민어가 잡히기 시작한다. 민어떼가 알을 낳으러 임자도 앞바다에 몰려오고 있다. 7월 말~8월 중순이 피크다. 보통 수컷(10㎏ 이상)이 암치보다 2배 넘게 비싸다. 솔보굿 민어껍데기를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뒤, 얼음물에 담갔다 꺼내면 꼬들꼬들해진다. 그걸 썰어 참기름소금장에 찍어먹으면 둘이 먹다가 셋이 꼴까닥해도 모른다. 민어 물렁뼈도 칼로 다져서 썰어먹으면 부귀영화 억만장자 눈곱만치도 안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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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회는 두께두께 어슷하고 큼직하게 썰어야 제 맛이 난다. 잇몸에 닿는 뭉툭한 촉감이 좋다. 윗니 아랫니 사이에 뭉툭하게 짓눌리는 느낌이 저릿하다. 달짝지근하고 살살 녹는다. 목포 영란횟집(061-243-7311)은 ‘식칼(?)로 뭉텅뭉텅 썰어주는’ 인심으로 전국 식도락가들에게 이름났다. 그만큼 아직도 소박하다. 막걸리식초로 만든 초장 맛도 일품. ‘영란’은 여주인이름을 딴 것이다. 목포 중앙동 삼화횟집(061-244-1079)도 이름난 곳이다.
서울 서초동 국제전자센터건너편 삼학도(02-584-4700·지하철3호선 남부터미널역 2번 출구)는 30년 넘게 민어전문집이다. 서울 논현동 리츠칼튼호텔 건너편 먹자골목에 있는 노들강(02-517-6044)도 장안의 소문난 집이다. 서울강북에선 삼청동 총리공관 옆 ‘병우네(02-720-92970)’가 으뜸이다. 모두 신안민어만 고집한다.
집에서 멀리 나가 혼자 어둑하게 누워 있고 싶을 때가 있다
당신은 나를 찾아 눈에 불을 켜고 밤 등대처럼 울지 모르겠으나,
나는 곧장 목포 유달산 밑으로 가서
영란횟집 계산대 앞에 민어 한 마리로 누워 있겠다
벗겨 손질한 껍질 옆에다 소금 종지를 두고
내장을 냄비에 끓여 미나리도 반드시 몇 가닥 얹겠다.
혹여 전화하지 마라
올 테면 연분홍 살을 뜨는 칼처럼 오라
바다의 무릉도원에서 딴 복사꽃을
살의 갈피마다 켜켜이 끼워 둘 것이니
때로 살다가 저며 내고 발라내야 할 것들 때문에 뼈는 아리지
그래도 오로지 뼈만이 폭풍 속에 화석을 새겨 넣지
그러므로 당신은 울지 마라
소주병처럼 속을 다 비워낸 뒤에야
바닷가 언덕에 서서 호이호이 울어라
-<안도현 ‘민어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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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민어인가? 왜 민어에만 칼을 대는가? 민어라고 어디 뼈가 아리지 않겠는가? 민어는 맛있다. 맛있는 게 죄이자 업보다. 물컹! 씹히는 살이 부드럽다.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 뭉툭하고 지긋이 닿는 느낌이 좋다. 담백하면서도 구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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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상 살다 보면, ‘저며 내고 발라내야’ 할 일들이 좀 많은가? ‘연분홍복사꽃 살점 떼어낼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그럴 땐 어둠 컴컴한 동굴에 처박혀, 제 상처를 핥으며 꺼이꺼이 울고 싶다. 아니다. 아예 땅바닥에 넉장거리로 드러누워 하늘을 우러러 보고 싶다. 가쁜 숨을 가지런히 하고, 다소곳이 서해소금밭 옆에 뼈로 남으리라.
“푸하하, 자, 이제 나를 회 뜨든, 매운탕 끓이든, 맘대로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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