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남도에 가서 음식점을 찾으면 푸짐한 상차림에 적이 놀란다. 두 사람 식사로도 한 상 그득하게 차려주고 한 사람에 고작 5-7천원을 받는다. 이 많은 음식을 차려주고 그런 값을 받으면 식당이 유지될 수 있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다.
싸고 푸짐한데 맛까지
서울이나 그 주변에 사는 사람이라면 요즘 7천원짜리 점심도 먹을만은 하지만 푸짐하다고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이들의 눈에는 국이나 찌개, 김치, 장류 외에도 구이와 지짐, 마른 찬, 젓갈류, 나물 등 다양한 반찬이 가득 차려진 반상을 보면 적어도 1만원 이상은 받아야 할 상차림처럼 비칠 것이다. 백반 정식류가 아닌 탕류도 음식값은 싼 편이다.
남도 중심인 광주의 금남로 LG증권 뒷골목에 자리잡은 명진식당이란 설렁탕 전문점은 부드러운 쇠고기를 듬뿍 넣어주면서도 5천원밖에 받지 않는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집은 설렁탕 한 그릇에 3천원을 받았다.
남도 음식점의 상차림이 이처럼 푸짐한 연유는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서도 짚어볼 수 있겠으나 주된 이유는 역시 입지적, 지형적 요인에서 찾아봐야 할 것이다. 즉, 남도는 들이 넓고 산이 깊은데다, 바다와 접해 있어 물산이 풍부하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남도를 다녀온 사람들은 영산강을 젖줄 삼은 드넓은 나주평야를 가로지르면서 ‘곡창의 남도’를 실감했을 것이다. 이처럼 너른 들에서 온갖 곡물과 채소가 나는데다, 서해와 남해에서 갖가지 해산물이 넉넉하게 공급되고 또 경상남도와 전라남•북도의 3개도에 걸쳐있는 광대한 지리산과 이에서 뻗어 나온 크고 작은 산줄기에서 수많은 산나물을 내놓는다.
남도 여인들의 손맛
여기에 남도 여인들의 독특한 손맛까지 스며들면서 남도 음식은 외지인들에게 경탄의 대상이 된다. 수많은 젓갈은 말할 것도 없고 온갖 산나물과 해산물도 이들의 손길을 거치면 맛깔스럽고 푸짐한 먹거리로 바뀐다. 남도, 특히 목포 일대의 대표적인 음식이라 할 수 있는 홍어요리만 해도 회와 찜, 애국, 삼합으로 자못 다양하다. 내용은 메모해 두었지만 소스를 챙기지 못한, 홍어 요리를 설명한 아래 인용문은 지금 봐도 찰지다.
“회는 홍어의 독특한 맛과 미나리의 향긋한 풍취로 조화를 이뤄내고 애국은 홍어 창자에다 된장을 풀고 겨울철 논밭에서 뜯어낸 보릿잎을 넣어 끓이며 삼합은 2년쯤 묵힌 배추김치와 삶은 돼지고기를 곁들인다. 또, 찜은 홍어를 마른 행주로 깨끗이 닦은 뒤 토막을 내 비닐로 싸서 항아리에 넣고 안방에서 3-4일간 발효시킨 다음 결따라 칼집을 내어 끓는 물에 살짝 쪄낸다. 이중 삼합에 탁주를 곁들이면 홍탁삼합이 된다.”
홍어 하나만으로도 남도 여인들의 손맛은 이처럼 다양한 별미를 만들어낸다.
남도 식도락 여행객
요즘에는 남도의 이런 맛깔스런 음식에 끌려 관광보다는 진미를 맛보려고 광주나 강진, 목포, 여수를 찾는 사람들이 꽤 있는 모양이다. 한마디로 서•남해 양쪽 바다에서 어획•채취한 온갖 해산물과 영산강 일대의 드넓은 논밭에서 수확한 다양한 곡물과 채소, 그리고 지리산의 깊은 골짜기와 산기슭에세 채집한 수많은 산나물로 조리한 갖가지 음식을 맛보려고 여행길에 나선 사람들이다. 이런 식재료에 남도 여인들의 손맛이 배면 김치나 찌개, 생채, 숙채는 물론, 구이와 볶음, 조림, 지짐, 튀김, 무침, 찜도 진미가 된다. 여기에 전과 편육, 갖가지 젓갈류, 장류까지 곁들여지면 30~40가지의 찬이 교자상을 그득 채운다. 이런 상차림의 남도 한정식에 군침을 흘리지 않을 여행객이 어디 있으랴.
남도 맛집의 대표주자, 강진 한정식집
이중 눈길을 끄는 고장(지역)이 강진이다. 남도의 중심지인 광주나 여수, 목포에도 이름 높은 한정식집이 여럿 있지만 유독 강진의 몇몇 음식점이 남도를 찾는 관광객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그 까닭을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넉넉한 관광수요에, 물산과 연관된 입지적 이점이 어우러진 결과일 것이다. 아래로 강진만, 위로 월출산을 끼고 있는데다 녹차밭, 청자도요지, 다산초당, 영랑생가, 백련사같은 관광명소가 촘촘히 자리잡아 관광객의 발길이 잦고, 또 바다와 평야, 깊은 산골짜기가 키운 온갖 풍성한 물산이 음식 맛을 한층 깊고 다양하게 만들었기 때문일 법 하다.
이런 맛을 4인 기준의 교자상에 가득 차려내는 강진의 유명 한정식집으로는 청자골 종가집, 해태, 명동, 예향, 다강 같은 곳이 꼽히는 모양이다. 강진 읍내에 오글오글 모여있는 이들 한정식집은 이런 저런 기준과 명목으로 구분 지어 4인 기준 10만원, 12만원, 16만원짜리 반상을 차려낸다. 담합이라도 한 듯, 구분 따라 매겨놓은 음식값이 똑같다. 한가지 기이한 것은 부부끼리만 여행길에 나선 사람들이 적잖을 터인데, 이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즉 2인상이나 자녀를 데리고 나온 가족 여행객을 위한 3인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소개되면서 널리 알려진 해태식당은 6만원을 받고 2인상을 차려준다. 자녀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밥상이다. 그러나 청자골 종가집은 2인상에 8만원을 받아 이런 상차림을 반기지 않는다는 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남도 한정식 상차림의 격식
이런 한정식의 상차림은 그 나름의 격식을 따른다. 지역적 특성에 따라 생선 중심의 해산물조리 10여 가지를 위주로 하되, 육류와 제철 나물, 젓갈류 서너 가지, 마른 찬과 잡채, 버섯탕수육 등으로 상차림을 구성한다. 남도 한정식의 명가를 자처하는 강진의 청자골 종가집도 가격에 따라 3가지 상차림을 내놓되, 요리나 밑반찬 숫자에서 서너 가지씩 차등을 두고 있지만 생선 위주에, 육류와 젓갈류, 제철나물, 밑반찬 중심으로 반상을 꾸미는 데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가령 육류는 소고기육회, 불고기, 삼합의 돼지고기가 빠짐없이 들어가지만 오리 훈제만은 하품(수라) 상차림에서 볼 수 없다. 생선류는 찜과 회, 구이, 튀김, 조림, 탕, 전골 등 다양한 형태로 조리된 음식이 10여가지나 올라오지만 고베와 진연으로 이름 붙인 상•중품 상차림과 달리 하품 반상에서는 굴비구이나 대구 탕수육, 키조개구이, 산낙지를 맛볼 수 없다.
이처럼 육류와 해산물 위주의 상차림에 돔배젓과 토하젓, 밴댕이젓, 갈치창젓, 전어젓, 바지락젓등 온갖 젓갈류가 철 따라 서너 가지씩 오르고, 생채와 숙채 형태의 제철나물, 잡채, 전류, 전복죽이 곁들여지면 밥과 국, 김치,찌개를 나중에 내오더라도 4인 교자상은 그득 차기 마련이다. 옛날 반가에서는 독상을 기본으로 국과 김치, 찌개, 장류를 제외한 찬의 가짓수로 상차림을 7첩, 9첩상으로 나눴다는데, 올해 휴가철 행선지를 남도로 잡았다면 쟁첩의 단순 합산으로도 4인 교자상 기준으로 9첩상이 되고도 남을 남도 한정식을 한번 맛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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