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미생물(微生物, microorganism) 덩어리다. 최근 세계 최대 규모로 진행된 과학연구 프로젝트로 확인된 연구 성과는 이 점이 매우 중요한 사실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미국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NIH)에서 1981년부터 진행한 인간 게놈 계획(Human Genome Project)의 성과로서 말이다.
1953년에 왓슨과 크릭에 의해 유전자라는 것이 마치 알파벳과 마찬가지로 4개의 염기로 구성되었고, 이들이 이중나선 구조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동일한 정체성을 지닌 세포를 쉽게 복제할 수 있어 생명의 연속성이 유지되는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게놈에 대한 연구가 진전되면서 많은 연구자들은 인간이 가진 23쌍의 게놈을 해독한다면, 인간에 대한 모든 비밀이 풀릴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약 100조개에 달하고, 이들 세포는 23쌍의 유전자로 작동된다. 따라서 이 유전자들이 해독된다면 인간의 질병과 성격, 아마도 인류의 미래까지 ‘과학적으로’ 예측하고, 심지어 조정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인간게놈 계획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큰 기대를 가진 까닭이었다.
그러나 인간게놈 계획이 종착역에 다다랐을 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연구자 대부분이 받아들여야 했던 것은 인간은 결코 인간의 세포만으로 이해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사람을 구성하는 세포의 안과 밖에는 세포 수의 10배 가량인 1,000조 개에 달하는 미생물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 무게는 성인 한 사람당 평균 3~4kg으로 추산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인간의 몸에서, 부모의 세포로부터 기원하지 않은 이들 미생물 세포는 인간을 구성하는 세포에 비해 훨씬 다양했고, 유전자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이었다. 인간 유전자가 23,000개로 헤아려지지만, 미생물 유전자는 그 수가 무려 3,300,000개에 달하기 때문이었다. 인간 유전자의 150배 가량의 미생물 유전자는 교묘한 방법으로 인간의 세포와 유전자와 공생하며, 사람을 조종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미생물 군집으로 불리는 이들 미생물들은 사람의 피부, 내장 그리고 몸 전체의 기관에 퍼져 있다. 이 가운데 몇몇 미생물과 그 유전자는 사람들이 잠자고 숨 쉴 때, 명상하며 요가할 때, 음식을 먹거나 운동할 때, 감정을 느끼거나 생각을 할 때 반응하고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 밝혀졌다. 그리고 더 많은 미생물들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해답을 기다리고 있으며, 이에 대한 해답이 제시될 때에야 유전자 차원에서 인간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 사람과 달리 인간과 공생하는 미생물은 언제든 다른 생명체에게 옮겨갈 수 있고, 다른 생명체로부터 옮겨올 수 있다. 이러한 일들은 살아 있는 것들이 살아가는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항상적으로 일어나게 마련이다. 역사적으로도 과거 시험, 전쟁, 상업과 무역, 관혼상제를 위한 친인척과 이웃의 모임 등 여러 곳에 살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는 일은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바로 그러한 때에 사람의 몸, 사람들의 옷과 짐, 짐을 나르고 사람을 태워주는 가축들과 함께 다양한 생명체들이 이동한다. 보이는 모든 생명체의 활동에는 보이지 않는 작은 생명체의 만남과 교류를 유발한다. 이를 생물학적 거래, 혹은 생물학적 교환이다. 이러한 생물학적 교환은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미생물 군집에 변화를 일으킨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미생물 군집의 변화는 인간의 삶을 바꾸었고, 역사를 변화시켰다.
[그림 1] 사람을 구성하는 다양한 미생물 군집[microbiome]
소리 없이 찾아온 미생물이 때론 사람들을 더욱 건강하고 강인하게 만들었고, 때론 사람들에게 심각한 질병을 만연시키면서 역사적 위기를 조성하였다. 사람의 눈에 잘 드러나 보이는 거시생태의 변화가 인간의 사람에 미치는 영향만큼,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미생물 역시 하나의 유기체로서 인간 역사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오늘날 서구에서 발달하고 있는 심신의학은 동양의학의 오랜 전통과 맥을 같이 한다. 음양오행론에 기초한 조선의 전통의학이 특히 그러하며, 중용의 미덕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생태적 균형을 지향하였다. 한의학은 일찍이 “먹는 음식과 치료하는 약의 근원이 같다[衣食同源].”라거나 약을 이용한 치료[藥治]보다 음식을 이용한 치료[食治]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한의학의 이러한 성과는 조선시대 생태환경의 변화에 조응하여 만들어지던 음식에 다양한 미생물을 활용하는 기술로 이어졌다.
맛난 음식을 만들고, 병을 일으키며, 약도 되는 미생물은 격물치지를 통해 탐구되며,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사람의 미생물로 이해되고 활용될 수 있었다. 그 결과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微示, micro]의 세계에 살던 미생물은 묵묵히 조선인의 삶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가꾸는 동반자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부 미생물의 교환은 사람과 가축에게 전염병의 만연을 가져왔다. 호랑이와 사슴이 크게 감소하는 가운데 소의 사육이 크게 늘어나는 거대동물의 생태적 변화, 지개간과 산림천택의 축소로 인한 환경적 변화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미생물을 중심으로 한 미시생태에 큰 변화를 야기하였다.
또한 동아시에에서 진행된 세력 변동과 국제 전쟁의 전개, 신항로 개척으로 바닷길이 열리면서 세계사적으로 진행된 생태 환경의 변화는 한반도의 생태 환경의 변화에 직접 영향을 미쳤고, 한반도에서 진행된 생태 환경의 변화 역시 세계사의 변동이 큰 영향을 주었다.
전염병은 생태환경의 변화에 따른 생명체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여러 양상 중 하나일 것이다. 특정 시기에 유행한 병원체의 특성을 파악하면 해당 시기에 진행된 생태 환경의 변화가 무엇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따라서 15~19세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역사적 기록에 나타난 전염병에 대한 기록을 살피는 것은 해당 시기에 진행된 생태환경의 변화에 대한 여타 기록의 갖는 불완전성을 보완할 수 있다.1)
곳곳에서 천방을 만들면서 개발된 논, 급격히 사육두수가 늘어난 소, 사라진 호랑이와 사슴은 한반도의 미생물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이를 살피기 위해 실록에서 전염병을 가리키는 글자인 ‘역(疫)’을 검색하여 20년을 단위로 하여 그 빈도수를 나타낸 것이 다음 <그림 2>이다.
17세기 이후 기록은 실록과 일기에 나타난 ‘역(疫)’의 빈도 추이를 함께 살필 수 있다. 실록과 일기는 ‘역(疫)’에 대해 어느 정도 유사한 패턴을 보여준다. 다만 ‘역(疫)’의 빈도가 높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중엽까지 빈도의 정점에서 다소 차이를 보인다. 이는 아마도 재정리된 역사적 기록의 성격을 지니는 ‘실록’이 새롭게 발생한 사건에 대해 더 가중치를 두어 기록을 재정리하지만, 일기는 그날그날의 보고를 기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 2] 조선시대 전염병[疫] 기록 추이 (* 검색어 : 疫)
따라서 ‘역(疫)’에 대한 실록의 기록은 해당시기 사관들이 인식한 조선 사회가 당면한 전염병에 대한 충격의 강도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1421~1440, 1520~1540, 1640~1660, 1760~1780의 시기는 전염병 발생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두드러진 변곡점이다. 즉 전염병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진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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