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들의 모자로 알려진 갓은 형태와 재료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갓 하면 떠올리는 黑笠은 양반 남자들의 평상모로 많이 쓰였는데, 말총과 같은 고급재료로 만든 것은 값도 대단히 비싸 가난한 서생들은 살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가늘게 쪼갠 竹絲로 틀을 짜고 그 위에 베를 덮어 만든 흰 갓, 곧 백립은 평상시에도 사용되었으나 조선 예종 이후로는 상례 때에만 쓰였다. 황색초로 만든 황초립은 별감이 평상복 차림에 착용하던 모자이고, 댓개비로 성기게 짠 패랭이는 보부상이나 역졸들이 썼다. 조선시대에는 남자가 쓴 모자의 형태나 재료만으로도 신분이나 지위, 직업을 알 수 있었고, 재산의 다과도 짐작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모자가 신분, 지위의 상징으로 쓰이기는 고구려도 마찬가지였다. 고깔 모양의 모자 折風은 고구려인이 즐겨 쓰던 모자로 양 모서리에 장식을 더하여 신분을 나타냈다. 평범한 사람은 단순히 머리에 절풍을 썼지만, 벼슬을 하는 이는 절풍에 새깃을 꽂아 이를 나타냈다는 것이다.『翰苑』에 인용된 『양원제직공도』에는 하급관인이 절풍을 썼으며, 상급관인은 幘을 썼다고 나와 있다. 『北史』에는 고구려의 귀인이 자주빛 비단으로 만들어 금, 은으로 장식한 蘇骨이라는 이름의 관을 썼다고 전한다. 『舊唐書』에는 왕은 백라관을 쓰고, 대신은 청라관을, 그 다음 등급의 관인은 배라관을 썼다고 羅冠은 발이 성긴 비단으로 만든 덧관으로 본래 쓰는 모자 둘레에 다시 씌운 것을 말한다.
고구려 남자들이 쓰던 모자가 신분에 따라 크게 몇 종류로 나뉜다는 사실은 위와 같은 역사기록을 통해 어느 정도 확인이 되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알기 어렵다. 고분벽화의 인물도는 기록으로 전하지 않는 부분도 알게 한다는 점에서 주요한 의미를 지닌다. 새깃 장식 절풍 가운데 새깃 두 개를 꽂은 이외의 것도 있었음은 무용총 벽화에서 잘 나타나는데, 사냥도의 주인공은 새깃을 가득 꽂은 절풍을 머리에 쓰고 있다. 신분, 지위의 높낮이에 따라 절풍에 장식한 새깃의 숫자가 달랐음을 알게 하는 부분이다.
(그림1)무용총 벽화: 새깃 꽂은 절풍 쓴 사람
책은 문관이나 무관의 의례용 모자로 주로 사용되었다. 고분벽화에는 뒤 운두가 뾰족하게 솟은 것은 주로 무사들이 썼는데, 말을 탄 급이 높은 무관은 검은 책을, 어깨에 도끼를 걸치고 행진하는 일반 무관은 붉은 책을 쓴 것으로 나온다. 앞부분이 모자 테보다 한 단 높고, 앞부분보다 더 높은 뒷부분이 두 가닥으로 갈라지면서 앞으로 구부러지거나 위로 뻗은 형태의 책은 문관들이 사용했음이 안악3호분 및 덕흥리벽화분 벽화에서 확인된다.
뒤 운두가 솟은 책 형태의 내관에 덧쓰는 외관인 라관은 왕과 대신들만 사용했다고 하는데, 고분벽화에서는 주로 무덤주인공이 라관을 쓴 채 정좌한 모습으로 그려진 사례들이 자주 보인다. 고분벽화에 보이는 라관이 백라관인지, 청라관이나 배라관인지는 벽화의 보존상태가 좋지 않아 대부분 확정하기가 어렵다.
(그림2)덕흥리벽화분 벽화: 흑건 쓴 사람들
巾은 역사기록에 별도로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수건과 같은 형태의 천으로 머리를 싸고 뒤에서 묶은 초보적인 모자이다. 검은천을 주로 사용한 건, 곧 黑巾은 시종들의 복식에서 주로 보이지만 사냥과 같은 야외활동 때에는 지위에 관계없이 사용했음을 고분벽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반구형 덮개와 햇빛가림용의 넓은 채양으로 이루어진 패랭이 종류의 모자는 감신총, 안악2호분 벽화의 등장인물들이 쓰고 있지만 고구려에 대한 역사기록에는 전하지 않는다.
감투싸움 한다고 할 때 감투는 벼슬자리를 뜻한다. 감투가 본래 말총이나 가죽, 헝겊으로 만든 탕건 비슷한 형태의 모자로 조선시대에는 평민이 사용하던 것임을 고려하면, 감투는 모자의 대명사로 여겨졌고, 모자는 벼슬을 상징하는 데에서 감투와 벼슬을 동일시하는 속담이나 말이 생겼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이런 종류의 속언은 고구려시대에도 있었을 것이다. ‘절풍 썼다’, ‘두건 싸움 한다’, 또는 ‘절풍에 새깃 꽂았네’ 식의 말들이 고구려 사람들 사이에 오갔을 법하다. 무용총 벽화 무용도의 춤을 선도하는 무용수가 머리에 새깃 꽂은 절풍을 쓴 것도 이런 종류의 모자가 벼슬자리와 동일시되던 당시의 풍토를 염두에 둔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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