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매춘부들의 몸을 기하학적으로 해부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은 입체파 그림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아비뇽은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매춘부들의 집단 거주지로 과거 ‘청량리 588’이나 ‘미아리 텍사스’같은 곳. 매춘부는 물론 미성년자와 귀부인을 가리지 않고 애정행각을 펼친 피카소의 여성편력은 예술로 승화시켰기 때문에 무죄인가? 샘솟 듯 솟구친 정력의 비결은 무엇일까?
<노인과 바다> 등 불후의 명작을 남긴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년)가 18년 연배인 피카소를 만나 물었다.
“당신의 여성편력은 화려하다. 샘솟 듯 솟구치는 정력의 비결은 무엇인가?”
“투우의 고장에서 태어나 투우의 거시기를 많이 먹은 탓이오.” 피카소는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헤밍웨이는 투우 거시기를 판다는 식당에 예약을 한 뒤 잔득 기대하고 들렀다. 웨이터가 쟁반에 받쳐 가져온 거시가가 형편없이 작았다.
“이보게 웨이터, 투우 거시기가 왜 이렇게 작은가?”
“오늘은 투우가 죽지 않고 투우사가 죽었습니다.” 웨이터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스페인 여행 때 가이드에게 들은 우스개지만 투우의 거시기는 ‘남자들에게 참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들이 보신탕집에서 단골에게만 준다는 ‘만년필’처럼. 경기장에서 장렬하게 죽은 투우는 곧바로 가공처리 되며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식도락가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투우의 거시기는 비싸다는 것.
헤밍웨이의 여성편력도 만만찮아 두 번의 이혼과 세 번의 결혼을 했다. 미국 시카고 출생인 그는 에스파냐 내전 때 특파원으로 취재한 적이 있다. 스페인의 풍광에 반해 론다에 머물며 투우를 다룬 소설 <오후의 죽음>(1932년)을 집필했다.
파블로 피카소의 고향은 스페인 남부 지중해 연안의 휴양 도시 말라가. 그가 두 살 때까지 살았던 생가는 미술관으로 바뀌었다. 성장하면서 바르셀로나와 바그다드를 거쳐 파리에 정착했다. 투우를 즐긴 피카소는 론다를 자주 찾았기에 두 사람의 조우는 가능하다.
론다는 말라가에서 버스로 세 시간 거리다. 론다의 상징은 누에보 다리. 42년에 걸친 난공사 끝에 완공된 높이 98m의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는 타호협곡은 오금이 저리도록 아찔하다. 협곡 너머로 펼쳐진 너른 들판의 목가적 풍광은 눈길을 시원하게 해준다. 다리를 경계로 옛날 아랍인이 살던 구 시가지 ‘라 시우다드’와 투우장이 있는 신 시가지 ‘엘 메르카디’ 두 구역으로 나눠진다. 누에보 다리 부근 언덕 위의 하얀 집들은 요정의 집처럼 아름답다. 누에보 다리는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도 등장하고, 그가 머물던 숙소는 5성급 호텔로 바뀌어 몇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
근대 투우의 창설자 프란시스코 로메로가 태어난 곳도 론다. 본래 스페인 투우사들은 말을 타고 소와 대결을 벌였다. 로메로가 ‘무레타’라 불리는 빨간 망토와 칼만 들고 소에게 도전한 것을 시작으로 스페인 투우는 지금 같은 형태로 변화했다. 바로크 양식의 론다 투우장은 1785년에 지은 스페인 최초의 투우장이었으나 지금은 투우박물관으로 활용한다. 투우장 앞에 검은 투우 동상이 달려들 듯이 앞발을 들고 서있다. 회랑에는 투우사들이 입었던 의상과 투우 포스터, 사진 등을 전시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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