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5세때부터 담배를 피웠다
담배는 전래되자마자 급속히 전파되었다. 전래될 초기에는 담배가 약초로서 인식되어 전파력이 컸다. “병든 사람이 피우면 좋다”라든지 “술을 깨게 한다”든지 혹은 “소화를 잘 되게 한다”는 등의 소문과 함께 담배는 빠르게 전파되었다. 아울러 한번 담배를 피우면 인이 배이게 되어 쉽게 끊지를 못해 보급속도가 빨랐다.
이에 “피우는 사람이 많아지니 심는 사람도 많아진다”라는 당시의 표현처럼 피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담배를 심는 사람도 크게 증가하였다. 농민들은 텃밭에 담뱃잎을 심어 담배를 피웠다.
유학자인 이수광은 그 상황을 1614년에 저술한 『지봉유설』에서 “지금 사람들은 담배를 많이 심는다”라고 적고 있다. 담배소비는 늘어났고, 담배를 재배하는 농가도 늘어났다.
담배는 농가에서 재배하는 필수적인 농경작물이 되었다. 풍기군수였던 고상안(高尙顔)이 1619년에 지은 『농가월령』에는 경상도지방에서 담배씨를 뿌리는 것을 묘사할 정도로 널리 행해졌던 것이다.
담배가 전래된 초기에는 모든 계층이 피웠다.
담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초보다는 기호품으로 애용되었고, 나아가 손님을 대접할 때 차나 술 대신 담배를 권하는 풍습이 생기면서 연다(煙茶 : ‘연기나는 차’라는 뜻) 또는 연주(煙酒)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담배의 수요는 급격히 증가하였고, 담배피는 사람도 양반만이 아니라 위로는 대신으로부터 아래로는 평민은 물론 천민까지 확대되었다. 또한 남자는 물론이요 여자도 피웠다.
이와 같이 담배는 전래되자마자 급속히 보급되었다. 효종대왕의 장인이면서 담배를 잘 피웠던 장유는 이러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담배를 흡연하는 것은 본래 일본으로부터 왔다. 일본인은 그것을 담바괴라고 하는데 그 풀은 남양(南陽)의 나라에서 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20년전에 비로소 전래되었는데, 오늘날에는 위로는 공경대부로부터 아래로는 목동의 천인까지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는 1635년에 펴낸 『계곡만필』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전래된 지 2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위로는 대신으로부터 아래로는 목동의 천인까지 담배를 피운다고 적고 있다, 이와 같이 담배는 조선에 전래되자마자 급속히 전파되었다.
심지어 5세때부터 담배를 피웠다
이렇게 당시 조선인들이 담배를 잘 피웠다는 사실은 외국인의 눈에도 기이하게 비쳐질 정도였다. 네덜란드인이면서 동인도회사의 상인인 하멜(Hamel)이 그러한 풍속을 기술하였다.
1653년에 그는 네덜란드에서 상선을 타고 일본의 무역상관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류하였다가 조선 정부에 의해 억류되어 13년 동안 조선에서 생활하다가, 조선을 탈출하여(1666년 9월) 네덜란드로 돌아가 그 동안의 생활과 조선에서 본 상황을 책으로 펴냈다. 그것이 『하멜표류기』이다.
그 책에서 조선인이 담배를 매우 좋아했던 풍속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조선인들 사이에는 담배가 매우 성행하여 어린이들까지도 4,5세때에 이미 이를 배우기 시작하며, 그래서 남녀간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처음 담배가 들어왔을 때에 그들이 은(銀)의 중량으로 이를 무역하였고, 그 이유로 (담배가 나는)남반국을 세계 가운데 가장 훌륭한 나라의 하나로 쳐다보게 되었다.”
즉 하멜이 보니 조선사람들은 4,5세때부터 담배를 배우기 시작하고, 남녀를 막론하고 모두 담배를 피우는 담배의 천국이었던 것이다. 당시에 담배값이 비싸서 은(銀)으로 무역할 정도였고, 담배를 생산하는 남반국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나라로 쳐다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담배가격이 매우 비쌌으며 귀한 물건이었다. 담배가 전래될 초기에 담배가 급속히 보급되자,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게 되었고, 그에 따라 담배 가격은 매우 비쌌으며 담배는 귀한 물건으로 취급되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조선 인조대왕은 담배 1근의 가격이 은 1냥이 될 정도로 비쌌으며(1624년), 『하멜표류기』에도 나타나듯이 담배를 거래할 때 은(銀)으로 팔고 산다고 하였다. 관청에서는 담배를 은(銀)이나 종이 등의 물품과 함께 고리대 자금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즉 1642년에 의주(義州)의 고가청(雇價廳)에서는 은 3천냥, 종이 8천권, 담배 3백근 등을 고리대 원금으로 활용하여 관청의 경비를 조달하였다.
심지어 품질이 좋은 담배는 귀한 물건으로 간주되어 뇌물로 활용되기도 할 정도였다. 숙종임금때 무인(武人) 서치(徐穉)가 관직을 구하기 위해 이조판서 민점(閔點)의 사위에게 담배 1태(태 : 말 등에 1짐을 싣는 무게)를 뇌물로 주고 감찰의 벼슬을 얻었다가 발각되어 조정에 큰 분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담배의 가격이 비쌌다는 사실은 당시의 민요에서도 드러난다. 담배가 전래될 당시의 경상도 민요라고 여겨지는 민요의 가사는 내용이 이러하다.
귀야 귀야 담바귀야 동래 울산의 담바귀야
은(銀)을 주러 왔느냐 금(金)이나 주려고 왔느냐
은도 없고 금도 없어 담바귀 씨를 갖이고 왔네
저기저기 저 산 밑에 담바귀 씨를 솔솔이 뿌려
위 글에서 담배를 ‘담바귀’라고 한 것을 보면 담배가 전래될 초창기의 민요로서 예상할 수 있는데, 그 민요에서 담배가 귀중한 자산인 은이나 금과 비견되면서 은이나 금 대신에 담배씨를 갖고 왔다고 일컫고 있는 것이다.
병자호란때 조선인 포로들을 송환해올 때도 담배가 필요했다.
담배는 외국과의 포로교환과 무역 거래에서도 귀하게 사용되었다.
1636년에 여진족들이 조선을 침략하는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여진족은 조선인을 포로로 데려갔는데 그 수가 10만명에 이르렀다. 여진족들은 그 포로들을 중국 봉천시장에 팔려고 내놓았는데, 거기서 조선인 가족들이 서로 만나 껴안고 통곡하는 장면이 눈뜨고 못볼 형국이었다. 이 포로들을 데려오는 대가가 많으면 수천 냥에 이르고 적으면 수십 냥에 이를 정도였다.
전쟁 후에 조선 정부에서는 이 포로들을 데려오는 문제가 급선무이어서 해결책을 모색하였지만 부모형제, 처자를 잃은 사람들은 한 시가 급하였다. 그들은 정부와의 협상을 기다릴 수 없었고, 사적으로 청나라에 가서 포로인 가족들을 데려오려고 하였다. 당시 여진족의 군인과 관료들은 담배맛을 보고 매우 좋아서 빠져버린 형편에 놓여 있었다. 그리하여 조선 사람들은 은, 면포, 종이, 담배를 가지고 가서, 청나라 관료나 군인에게 주고 포로인 가족들을 데리고 왔다. 특히 담배는 청국인에게 인기좋은 물품이며 기호품이었다.
청국과의 무역품에도 담배가 많이 수출되었다
중국에 사신으로 가는 사절단들은 정식의 사신과 통역관 및 상인으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가면서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고 무역을 통한 이익을 얻기 위하여 중국인에게 인기가 좋은 인삼․담배․담뱃대 등을 가지고 가서 판매하여 노자에 보태쓰거나 돈을 벌어오기도 하였다. 특히 상인들은 이러한 물품을 많이 가지고 가서 청나라 사람들에게 판매하여 많은 이익을 얻기도 하였다. 한 예로 『통문관지』라는 책에 의하면, 사신이 국경에서 중국의 수도인 북경까지 한 번 왕복하는 데 담배 약 4천갑, 담뱃대 약 1,800개에 이를 정도로 많은 양을 가지고 갔다. 사신이 이 정도로 가지고 갔으니, 동행하였던 역관이나 상인들은 경비와 상품판매용으로 훨씬 더 많은 양을 가지고 갔을 것이다.
그리하여 중국에서는 조선의 담배가 너무 많이 들어오고, 그 반대급부로 은화 등의 물품이 빠져나가자, 1638년에는 청나라 태종 황제가 직접 담배 피우는 것을 금지하는 법령을 공포하기도 할 정도였다. 이와 같이 당시 일본, 조선, 청국 등 동아시아사회에서 담배가 준 영향은 컸던 것이다.
몽고에서 소를 구입해올 때도 담배가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몽고로부터 소를 사들이는 데도 담배가 사용되었다. 병자호란 뒤에 전국에 소의 전염병이 만연하여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소가 죽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몽고에서 농사짓는 소를 구입해오고자 하였는데, 소를 구입해오는 대신 그 교역품으로 면포와 짐승의 가죽 및 담배를 주었다. 당시 몽고인들도 담배를 좋아하여 소를 수출하면서 그 대가로 담배를 받을 정도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사회에 담배가 전래되면서 당시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담배는 경제생활과 문화생활에도 큰 부분을 차지함으로써 인간생활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남도사람들] 호남철도 이야기 (0) | 2017.10.13 |
---|---|
[담배이야기] 17세기 동북아시아의 문제아 (0) | 2017.10.13 |
[남도사람들] 지방사란 무엇인가? – 지방사 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 (0) | 2017.10.13 |
[남도사람들] 지방사란 무엇인가? – 용어에 대하여 (0) | 2017.10.13 |
[담배이야기]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은 언제인가 (0) | 2017.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