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계화는 모더니티 아래 억눌리고 획일화를 강요받았던 근대화 시기의 세계화와는 다르다. 각 주체들의 자아가 해방되고 해방된 자아들이 창조적으로 전세계적인 교류를 만들어 나간다. 주체의 해방은 한 나라 안으로 들어올 때 곧 지방화가 된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세계화는 지방화와 모순 되지 않는다. 이런 지방화를 위해 지방사에 대한 바른 정립이 필요하다는 건 그리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이 사이트에서는 “지방사란 무엇인가?”부터 시작하여 지방사의 관점에서 새롭게 쓴 지방의 역사를 연재할 예정이다. 다음 소주제는 “지방사 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첫 번째 주제 : 지방사란 무엇인가?
오늘의 소주제 : 용어에 대하여
서울지방경찰청이라니?
서울 한복판에 있는 경복궁역에서 남쪽을 향해 보면 첫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아니 서울의 한복판에 서울경찰청도 아닌 서울‘지방’경찰청이 서있나? 서울과 지방이라는 말이 이렇게 나란히 쓰여도 되나? 이렇게 의심하면서 인터넷 검색창에 ‘서울지방’이라고 쳐 봤다. 아니나 다를까? 무수히 많은 ‘서울지방’의 수식어를 단 기관들이 떠올랐다. 서울지방법원, 서울지방병무청,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서울지방국세청, 서울지방노동청 등등 ….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서울시장도 지방자치단체장이지 중앙정부의 장은 아니지 않은가? 서울은 나라의 수도이자 중심이라 항상 중앙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이런 예들을 보면, “서울=지방”이 맞나? “서울=중앙”이 맞나? 이런 헷갈림까지 생기기 시작한다. 자, 이제 이런 헷갈림에서 벗어나 보자.
지방사, 지역사, 향토사. 무엇이 맞나?
지방사란 그 용어부터 시빗거리가 많다. 시비를 거는 상대로는 지역사가 있고, 향토사가 있다. 말이라는 게 사람들이 만든 약속이다. 말 자체가 스스로 뜻을 갖고 있지는 않다. 같은 뜻(기의 signified)을 서로 다른 단어(기표 signifier)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고, 하나의 단어에 서로 다른 뜻을 담고 있는 경우도 있다. 지금 여기서의 문제는 전자에 있다. 즉 우리는 보통 지방사, 지역사, 향토사니 해서 서로 단어를 달리 쓰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거의 엇비슷한 이야기들인 경우가 많다. 물론 그렇다고 아주 똑같지는 않다. 그러니 먼저 이 세 단어는 서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살피면서 우리가 지방사라고 했을 때 그 지방사가 담고 있는 뜻은 무엇인가에 대해 개념적인 정리를 해 두고자 한다.
서울에 사는 사람은 전라도 향토사가가 될 수 없다.
먼저 향토사란 말부터 살펴보자. 향토라는 단어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그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향토란 조상 대대로 살아오고 있다는 전통의 의미를 내포한 내 고장이란 뜻이다. 태어나 자란 고장을 정의적(情誼的)으로 표현한 친근감 있는 말이다. 따라서 향토사란 애향적 성격을 지닌 자기 출신 고장의 역사라는 말이 된다. 향토사학자들이 잡은 연구 주제나 연구 대상은 거의 그곳 향토성과 인연이 깊은 것들이다. 그런 점에서 향토사는 무엇보다 연구자가 그 지방 출신이라는 점이 전제되어 있다. 아무리 어떤 고장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서울 사람이 전라도를 연구하면서 “나는 전라도의 향토사학자다.”라고는 하지 않는다. “연구 주체와 연구 대상이 태생적으로 연결되어 있느냐 아니냐”하는 점이 “향토사냐 아니냐”를 가름하는 주요 기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향토사는 지방사와 분명히 다른 영역이다.
지방은 3차원, 지역은 2차원
이번에는 ‘지방사’와 ‘지역사’에 대해 살펴보자. 지방은 중앙이란 맞선 말이 있다. 중앙과 지방은 그러니까 상위와 하위의 개념이다. 그런 점에서 지방은 중앙에 종속된 개념이다. 반면에 지역은 그 자체 독립된 개념이다. 이를 다시 말하면 지방은 중앙을 상대로 한 수직적 공간 개념이고 지역은 상대가 없는 수평적인 공간 개념이다. 각각 3차원의 공간과 2차원의 공간으로 서로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지방은 결코 국가를 넘어서는 단위가 없다. 그러나 지역은 국가라는 경계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한국사의 범주 안에서 역사연구를 한다고 전제할 때 지방사는 그 용어 자체로 한국사의 일부가 되지만 지역사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이 점 또한 지방사와 지역사의 근본적인 차이가 된다.
지방은 차별의 대상이 아니다. 국가의 상대일 뿐이다.
이런 차이가 분명한데도 왜 지방사보다 지역사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이는 지방이란 말이 중앙에 대한 종속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종속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따라서 지방을 종속적인 용어로 본다면 그걸 싫어하는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하다. 하지만 거기에 오해가 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한국사를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지방의 역사가 한국사의 일부분이 된다는 것까지도 부정할 수는 없다. 그걸 종속이라고 한다면 그런 종속은 당연히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지방사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종속은, 지방이 국가에 종속되어 있다는 그런 종속이 아니다. 그보다는 지방이 서울이란 공간에 대하여 차별 받는 열등 공간으로 폄하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대상으로 하는 연구공간이 이런 차별적인 대상이 된다면 싫어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도 지방이다. 그리고 지방이란 말에 애당초 그런 차별의 의미가 없다. 따라서 지방이란 말에 대한 거부감이 이와 같은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면 그런 오해는 쉽게 불식될 수 있을 것이다.
서울도 지방이다.
바로 여기에 답이 있다. 지방이란 용어는 서울을 제외하지 않는다. 지방이란 말은 서울이란 공간을 특권처럼 빼놓고 있지 않다. 서울도 국가를 상대로 하면, 여전히 지방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이 바로 그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이라고 해서 서울과 다른 특별한 열등의식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일찍이 우리 조상들이 만든 전국지방사라고 할 수 있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년)을 비롯하여 각종 여지도서류(輿地圖書類)에는 반드시 「경도(京都)」와 「한성부(漢城府)」를 별개의 장으로 구성하고 있다. 경도는 ‘수도로서의 서울’이지만 한성부는 ‘지방으로서의 서울’인 것이다. 대통령과 서울시장은 똑같이 서울에 있지만, 그 위상이나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 따라서 한성부로서의 서울은 지방사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행정단위로서의 ‘서울’을 ‘지방자치단체’라고 할 때는 아무런 의심도 없다가 ‘지방’이라고 하면 무의식적으로 ‘서울’을 빼는 습관적 인식은 ‘수도로서의 서울’과 ‘지방으로서의 서울’을 구분하지 못하는 오해가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오해에서 벗어난다면, ‘지방사’라고 해서 그 말 안에 종속적인 의미를 안고 있다는 열등감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다.
껍질보다는 내용
중요한 것은 지방사니 지역사니 하는 용어의 껍질이 아니라 실제로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진정한 구분도 그 내용이 정해 줄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한국사를 대상으로 할 때 한하여 우리가 다루려고 하는 유형의 학문을 지방사라는 용어로 통일해서 쓰자는 제안을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