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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바둑이야기]프로의 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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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kabiii 2017. 10. 1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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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사와 슈코는 60년대 일본 바둑의 간판스타였다.사카다와 더불어 시대를 호령했는데 그는 자잘한 기전보다는 큰 기전에 유독 강했다. 
 
 지금은 기성전이 1위 기전이지만 그 이전에는 명인전이 컸다.지금 명인전과 구별하기 위해 당시 1위 기전인 명인전을 구 명인전이라고도 부른다. 
 
 구 명인전에서 후지사와는 62년 첫 우승자가 된다.그후 사카다에게 타이틀을 빼앗기고 린하이펑에게로 넘어갔다.그러다 70년도에 한번 더 타이틀을 따낸다. 
 
 그런데 77년 일본 바둑계는 명실공히 최고 기사를 뽑는다는 의미에서 기성전을 창설하게 된다. 
 
 지금도 그들은 기성전 뒤에 수식어로 최고기사 결정전이란 꼬리표를 단다.대단한 자존심이라 할 것이다.  

 77년이면 린하이펑이 득세하고 이시다 가토 그리고 후배 그룹에서는 고바야시 조치훈도 속속들이 정상그룹으로 들어차던 시절이었다.과연 누가 최고의 기사가 될 것인가.마치 88년도에 생긴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처럼 당시는 관심이 컸다. 

 후지사와는 당당히 결승까지 올라왔다.초대 챔프는 도전기 없이 결승에서 이기면 챔프다.상대는 뜻밖의 하시모토 우타로.후지사와보다도 더 노장기사였다.후지사와는 운좋게 기성전 초대 챔프에 오른다.그때만 해도 바둑가에서는 운이 좋았다고들 전부 믿었다.  

 당시 후지사와는 술독에 빠져 바둑은 뒷전이었고 경륜에 맛을 들여 시쳇말로 ‘백수’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때였다.  

 그러나 그가 단 한번의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던 기적을 무려 6년이나 연속으로 해내었으니 그를 ‘기성전의 사나이’라 아니 부를 수가 없다. 

 도전자만 해도 당시 최고의 기라성들이라고 할 것이다.그가 83년 한국의 조치훈에게 기성을 빼앗길 때까지 무려 6연패를 달성했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여타 기전에서는 전혀 성적을 내지 못한 그가 기성전 도전기만 되면 힘을 쓰니 그것은 마치 신화처럼 보여지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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