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1636년)의 상처와 『박씨전』의 유행
1627년 정묘호란 이후 후금과 형제의 관계를 맺는 치욕을 당했지만 조선 조정의 강경 분위기는 여전히 누그러지지 않았다. 이러한 강경론에 기름을 끼얹듯이 청나라는 군신관계를 요구해왔고 조선 조정은 분노를 더 이상 감추지 않았다. 일전불사의 항전태세. 그러나 그것은 병력배치와 군사시설 확보라는 ‘실제’없이 오랑캐는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환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환상과 현실의 싸움, 그 결과는 너무나 명백하였다. 1. 승산 없는 전쟁의 강행 1636년(인조 14) 4월 국세를 확장한 후금은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수도를 심양에 정하였다. 본격적인 중원 장악의 틀을 마련한 것이다. 야심에 찬 인물, 태종 홍타이지 역시 스스로 황제를 칭하면서 차근차근 중원 지배의 야망을 현실화시켜 나갔다. 명나라에 대한 총..
지나간 것은 역사
2017. 10. 24. 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