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이런 날씨였다.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으레 매년 4월 초에 벚꽃이 이쁘게 피고 이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여기를 찾아오곤 했다. 꽃이 만발하였던 2011년 4월 6일 오전 10시 경 진해구에 자리한 해군사관학교 통해관, 그때는 장교교육대대 건물로 쓰인 필자의 연구실에 기무사령부 소속 예닐곱 명의 수사관들이 전격적으로 압수 수색을 진행하였다.
독자 여러분, 영화 <변호인>을 기억하는가. 2013년에 개봉한 영화로 1980년대 공안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캐릭터를 소화했다는 배우 송강호 씨의 절절한 연기가 호평을 받은 바로 그 영화. 지금은 미결수로 갇혀 있지만, 당대 대통령으로서 위세가 당당했던 박근혜 씨의 미움을 산 영화. 바로 그 영화다.
[사진1] 영화 ‘변호인’ 포스터 (네이버 영화)
1980년대 수많은 공안사건이 최근에 영화화되고 있는 것은 한국 사회의 민주화 지표가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많은 공안사건들이 조작되었고 그 과정에서 무고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다. 영화 <변호인>이 수많은 관객을 불러왔던 것은 특정 인물의 정의감을 보고 싶었던 것도 한 이유가 되겠지만 먼저 내 가족, 혹은 친구나 선후배의 사연으로 들었던, 그리고 그걸 들었던 순간 아무 도움도 줄 수 없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일종의 ‘참회’과정으로 이 영화를 봤다고 생각한다. 즉, 한국현대사를 관통했던 주요 기제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빨갱이 콤플렉스’에 대한 한국인들의 심성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부족하게나마 개인적인 일을 <변호인>에 기대어 교차적으로 쓸 수 있게 된 점은 실로 영광이나 다른 한편으로 필자의 개인적인 일을 침소봉대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는 든다. 그러나 내 일이 엊그제 있었던 ‘지나간 미래’라는 점에서 여전히 이 문제는 독자들과 공유해보고 싶었다. 영화 <변호인>에서 인상적이었던 세 장면과 함께 교차적으로 살펴보겠다.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조소의 대상이 되었던 장면은 아마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버젓이 검사에 의해 이적표현물로 표현된 재판정 장면이었을 것이다. 바로 극중에서 박진우(임시완 역)가 글읽기 모임 과정에서 경찰들에 의해 붙들려가고 이후 자신의 소모임 활동을 고문 과정에서 ‘자백’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군사독재 시절 특히 지식인이나 지식을 공유하는 집단이나 단체에 활동했던 사람들에게 으레 붙었던 칭호는 국가보안법 1) 에서도 ‘이적표현물 소지’였다. 송우석(송강호 역) 변호사는 박진우가 읽었던 서적들을 부산에 있는 서점에서 손쉽게 구해서 읽었음을 재판장에서 강조하고, 더 나아가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E. H. Carr에 대한 감정서를 주한영국대사관에 요청하여 Carr가 소련에 체류한 영국의 외교관이지, 박진우를 옭아맸던 소련 측 인사가 아니는 점을 밝힌다. 어디 『역사란 무엇인가』뿐인가, 리영희, 한완상,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이적표현물로 둔갑했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역사 학도들에게는 쓴웃음을 던져주었을 것이다.
[사진2] 영화 ‘변호인’ 스틸컷 (네이버영화)
내 사건은 어땠을까. 슬프게도 군이라는 특수성이 발휘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영화보다 더 ‘구린’ 수준이었다. 특히 문제가 되었던 것은 『09학년도 2학기 [국사] 수업 강의노트』와 『해방전후사의 인식 1-6』, 그리고 김일성에 관련한 논문들이었다.
‘강의노트’에 대한 검사의 공소장에는,
동북항일연군 관련 내용, 김일성의 북한 내 입지 설명, “공격적인 의도에서 기획되었다기보다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자구책“의 일환으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설명.
피고인은 위 문건이 ‘혁명적 수령관, ‘주체사상‘, ‘선군정치‘ 등을 북한 역사의 내재적 산물로 정당화하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옹호하며, 김일성의 ‘조국광복회‘ 결성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어 북한의 역사관과 대남전선을 정당화하고 고무, 동조하는 문건임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 미래의 해군장교가 될 생도들에게 교재로 활용할 목적으로 위 문건을 제작.
했다고 보았다. 필자가 2009년 임관한 이후 수업 때 보조교재로 쓰고자 ‘강의노트’를 제작하였고, 주로 인용한 저서는 한국사연구회에서 공저한 『새로운 한국사 길잡이(下)』다. 그런데 군 검사는 한국사연구회의 이적성 여부를 검토한 이후에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이적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체적인 책의 맥락을 “읽지도 않고 일부 표현을 강조하는” 공안수사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아마 이 부분을 언급하는 것이 상당히 의아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죄추정의 원칙을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은 이유는 바로 이것이 ‘공권력’과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압수수색 영장, 미란다 원칙 등 경찰이 행사하는 공권력은 그 자체로서 제한적으로 행사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절차를 매우 중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보안법 사안에서는 한낱 글자에 불과하다. 박진우를 비롯한 극 중 독서회 구성원들은 급습한 경찰들에 연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산 모 처에서 차동영(곽도원 역)이 지휘하는 경찰들에 의해 고문을 당한다. 재판정에 입장할 때 이들은 포승줄과 수갑이 채워진 채로 재판을 받게 된다.
공권력은 주지하다시피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유일하게 법적 보호를 받는 ‘폭력’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국가보안법에서 규정한 ‘이적 사범’은 그 자체로서 ‘짐승’이고 사라져야 할 ‘세균’같은 존재였다. 따라서 인권은 고사하고 잡혀간 사람들이 서로 자신의 손으로 경찰이 미리 작성한 자술서를 작성하는 기막힌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필자의 경우는 어땠을까. 장교라는 신분이라 할지라도 어쨌든 공안사범으로 ‘찍힌’ 이상 퇴로는 없었다. 2011년 6월 27일부터 대법원에서 판결이 난 2014년 9월 25일까지 기소휴직은 보이지 않은 감옥이었다. 이 기간 재판이 종료되기 전까지 군 신분은 유지함에도 군에 있지 않았고, 생업을 위한 취직을 알아볼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군인’이기 때문이다.
2012년 7월 27일 항소심이었던 용산 고등군사법원에서 내 재판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문제는 무죄 판결이 났다. 그럼에도 해군본부, 국방부에서는 필자에 대한 어떠한 인사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로써 기소휴직은 2014년 9월까지 지속되었다.
자기가 쓸 때는 전가의 보도로 쓴 ‘공권력’을 정작 죄 없음이 밝혀질 때 대답하지 않는 그들. 솔직히 말해 차동영으로 대표되는 공권력의 행위자들은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이들이 아니었다. 어쩌면 우리 아버지, 내 남자친구, 사랑스런 남편일 수도 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박진우에 대한 고문 사실을 끈질기게 묻는 송우석의 심문에 차동영은 올곧게 국가를 위해 일했음을 강조한다. 그런데 차동영의 이러한 모습은 영화 중간에 복선을 충분히 깔아주고 있어 이 캐릭터에 대한 파악을 쉽게 해준다.
가령 극 중 검사와 조작사건에 대한 파일 문건을 받아오면서 차동영은 검사에게 고등계 형사였던 선친의 사례를 들려준다. “고등계 형사가 범인을 잡아들인다는 것은 나라가 망한다는 징조여. 고등계 형사는 범인을 잡는 것이 아니라 예방하는 것이여.”라는 말을 남겼던 그 선친은 한국전쟁 때 살해되었다는 점을 고백한다. 그렇다. 어렵게 예상하지 않아도 차동영의 선친은 일제 시기 이래 고등계 형사였다는 점과 그러한 선친의 뒤를 이어 ‘빨갱이’를 잡아들이는 자신의 행위는 애국행위라고 굳게 믿는다.
또 한 장면, 박진우의 고문 현장을 찾아본 송우석을 가차 없이 구타하면서 중간에 애국가가 나왔을 때 여지없이 국기의 방향을 따라 국기에 대한 경례를 취하는 장면은 차동영의 변태적 행동들이 절대로 차동영 개인의 문제로 치환할 수 없다는 점을 암시한다.
차동영은 재판정에서 고문 행위를 고백한 군의관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없음을 질타한다. 그러한 모습에서 관객들은 차동영의 잔혹함과 목적성에 혀를 내두르겠지만, 필자의 시각으로는 좀 다르다. 국가를 물적 대상으로 보고 그에 대한 변함없는 숭배와 충성이 자신의 잔혹했던 행위들을 합리화해 주는 근거였다고 본다. 눈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 의미의 국가에 대해 그렇게 맹목적으로 집착했던 것은 누구를 위해서 살았던 것이 아닌, 자신의 비인간적 행위의 원천을 국가를 위한 충성으로서 주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것이 비극인 점은 그것이 차동영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의 군대에서 사법권이 군 지휘관에게 유명무실한 존재라는 점은 불문가지다. 우리는 <변호인>을 보며 보이지 않았던 차동영으로 대표되는 이들 존재에 섬뜩함을 느꼈지만, 한 편으로 이들은 아주 가까운 우리 어느 주위에 자리해 있다. 이것이 분단 체제를 뒷받침하는 주요 세력이라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변호인>에 대한 인상적인 장면 셋을 필자의 개인적 사연과 묶어서 대략 살펴보았다. 2017년 청룡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병헌 씨는 “지금 현실이 내부자를 뛰어넘었다”고 남긴 수상 소감은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그렇다. 때로는 현실이 더 영화다운 허구를 보여주기도 한다.
1980년대가 군부독재의 말미였음을 우리는 파악할 수 있지만, 어찌 보면 그 시대를 온 몸으로 싸웠던 선배들 덕분에 군부독재를 1987년으로 형식적이나마 그치게 했다는 점이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특정 ‘초인’의 역할 외에도 다수의 ‘말하지 않은 대중’들이 더 이상 야만의 시대를 두지 않겠다는 집단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고, 그것은 지난 2016년 겨울 광화문에서 보여준 모습이었다. 이러한 모습 속에서 다시는 <변호인>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회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극 중 송우석이 재판부에 일갈한 대사)”
1) 특히 문제가 되었던 조항이 바로 국가보안법 7조이다.
제7조 (찬양·고무등) ①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③ 제1항의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④ 제3항에 규정된 단체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유포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⑤ 제1항·제3항 또는 제4항의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한 자는 그 각항에 정한 형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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